감독
얀 핀카바 Jan Pinkava

주연
밥 페터슨....제리
Bob Peterson....Geri

제리

언젠가 샤를르 드골의 친구인가 하는 사람이 드골에 대해 회상한 글을 읽은 적 있습니다.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대충 이런 것이었어요. "그는 혼자 있을 때는 혼자하는 카드놀이를 한다. 게임이 불리해지면 그는 속임수를 쓴다. 군인은 이겨야 하기 때문에."

혼자하는 게임은 늘 이런 패러독스에 빠집니다. 이론만 따진다면 혼자하는 게임은 순전히 게임 자체의 즐거움을 위해서 하는 것이겠죠? 하지만 게임에서 승부욕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혼자하는 게임에 개입된 승부욕은 어떻게 될까요? 여기서 이긴다는 행동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픽사의 애니메이터인 얀 핀카바가 감독한 단편 [제리의 게임]도 그런 설정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이 영화의 제리는 공원에서 혼자 체스를 두는 노인입니다. 그는 자기 자리에서 한 수를 둔 뒤 느릿느릿 상대편 자리로 걸어가 한 수를 둡니다. 그리고 다시 느릿느릿 자기 자리로 돌아와 자기 수를 두는 거죠. 문제는 제리보다 제리의 '상대방'이 훨씬 게임을 잘 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제리는 최후의 선택을 쓸 수밖에 없죠.

[제리의 게임]은 흥미진진한 심리 게임입니다. 제리와 제리의 상대방인 제리는 전혀 다른 성격의 독립된 인물입니다. 순하고 얌전한 제리는 안경을 벗고 느릿느릿 맞은 편 의자로 걸어가 앉는 순간 전혀 다른 인물로 변합니다. 훨씬 똑똑하고 저돌적이며 조금은 야비한 인물로요. 영화는 조금씩 가속되어 결국 중간 단계를 완전히 지워버린 교활한 편집으로 두 역할을 하는 한 사람을 진짜 두 사람으로 만들어버립니다. 그 결과 둘의 게임은 아주 부조리한 초현실성을 부여받게 되지요.

기술적인 면에서 [제리의 게임]은 컴퓨터 그래픽으로 인간이라는 대상을 구현하는 일련의 시도 중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품입니다. 물론 이 영화에 사용된 기술은 여전히 과도기적이라, 요새 보면 이 작품이 처음 나왔을 때만큼 제리의 사실성이 감동적으로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제리의 피부는 여전히 사람의 피부보다는 색칠한 플라스틱처럼 보이거든요. 바로 그렇기 때문에 줄거리만 보면 "이 영화를 꼭 애니메이션으로 찍을 필요가 있었을까"하는 생각도 드는 거고요.

그러나 캐릭터의 사실성을 떠난다면 제리는 여전히 굉장히 멋진 창조물입니다. 일단 제리는 기가 막힌 배우입니다. 제리처럼 멋지게 일인 이역을 소화해낼 수 있는 사람이 할리우드에 얼마나 되겠어요? 제리는 처음부터 그 역을 위해 디자인된 배우가 아닌가요? 그의 인상적인 존재감과 연기만으로도 애니메이션이라는 매체의 선택은 정당화됩니다. [제리의 게임]은 어쩔 수 없는 애니메이션 배우를 위한 영화니까요. (04/01/14)

DJUNA

기타등등

제리는 [토이 스토리 2]에서도 카메오로 출연했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