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사카구치 히로노부 Hironobu Sakaguchi

주연
밍나....아키
Ming-Na....Aki
알렉 볼드윈....그레이
Alec Baldwin....Grey
도널드 서덜랜드....시드
Donald Sutherland....Sid
제임스 우즈....하인 장군
James Woods....General Hein
스티브 부세미....닐
Steve Buscemi....Neil
페리 길핀....제인
Peri Gilpin....Jane
빙 라임즈....라이언
Ving Rhames....Ryan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아키

듀나 [파이널 환타지]가 시작되면, 관객들은 폐허가 된 외계 행성의 황량한 풍경을 말없이 응시하는 젊은 여자의 눈을 보게 됩니다. 사전 정보 없이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당황할 거예요. 클로즈업된 눈은 굉장히 사실적이고 디테일도 완벽합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어딘지 모르게 비현실적이거든요.

[파이널 환타지]가 추구하는 이미지는 어딘지 모르게 17세기 네덜란드 회화와 유사합니다. 디테일은 극도로 사실적이지만 아무리봐도 진짜는 아닌 그런 느낌 말이에요.

그런 디테일은 이 영화에 초현실적인 매력을 부여합니다. 관객들은 아키의 흘러내리는 머리칼, 깜빡이는 눈과 같은 것들에 매료됩니다. 하지만 그런 건 실사 영화나 현실 세계에서는 뻔하디 뻔한 것들이죠. 관객들은 전적으로 재창조된 이 디지탈 우주 안에서 움직이는 사물들을 전혀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아름다움을 떠나서 시각적으로 아주 강렬한 영화죠. 아주 자잘하고 평범한 사물들도 관객들의 주의를 요구하니까요.

파프리카 과연 그렇게 사실적이긴 한가요? [파이널 환타지]는 [슈렉]처럼 기술적으로 과도기 단계에 머물러 있는 작품입니다. 어느 쪽이 더 우월하냐고요? 글쎄요. [파이널 환타지]의 캐릭터들이 더 사람에 가까워보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슈렉]의 캐릭터들이 가지고 있던 발랄한 생명력이 없습니다. 아마 사실성에 지나치게 치중한 결과가 아닌가 싶어요.

네, 아키의 눈이 클로즈업되는 장면의 인상은 굉장히 강렬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장면에서 이 영화의 디지탈 배우들은 그냥 디지탈 인형들처럼 보입니다. 피부는 생기없고, 동작은 굳어 있으며 표정은 뻣뻣하기 이를 데 없어요. 배우들은 어딘지 모르게 중력도 없으며 시간의 흐름도 반쯤 느린 그런 비현실적인 공간을 부유하고 있어요.

밍나나 알렉 볼드윈과 같은 성우들의 괜찮은 더빙 때문에 더욱 그런 티가 나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디지탈 배우들은 생기발랄한 성우들의 목소리를 느릿느릿하고 힘없이 따라가고만 있거든요.

듀나 전적으로 사람과 똑같은 이미지는 애당초부터 기대할 수 없는 것이었죠. 아직 그럴만한 기술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으니까요. 하지만 과연 이런 컴퓨터 티가 나는 이미지가 그 자체로서의 미적 가치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의 뚝뚝 끊어지는 동작이나, 마리오넷 인형 관절의 잘그락거리는 소리처럼, 이런 컴퓨터 그래픽 특유의 이미지 역시 사실성과는 상관없는 고유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습니다.

디지탈 배우들의 뻣뻣한 연기도 전적으로 나쁘기만 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의 생기 없는 동작은 어딘지 모르게 최면에 걸린 사람들이나 몽유병자들을 연상시키는데, 그러다보니 악몽과도 같은 영화의 분위기에 참 잘 어울리는 편이거든요.

파프리카 이미지에 대해 이야기하느라, 스토리에 대해서는 완전히 잊고 있었네요.

듀나 이미지가 전부인 영화니까요.

파프리카 그래도 스토리를 잊을 수는 없지요. 제가 간단히 요약할게요. 영화는 2065년에 시작됩니다. 몇 십 년 전 운석과 함께 묻어온 팬텀이라는 외계 생물이 지구를 정복했고 지구인들은 배리어로 둘러싸인 도시에 숨어 살고 있습니다. 주인공 아키 로스 박사는 신비주의적인 가이아 이론(러브록의 이론과 헛갈리지 마시길)의 신봉자 시드 박사와 함께 외계 생물들의 정체를 밝히기 위한 연구를 하고 있지요. 그러는 동안 호전적인 하인 장군은 제우스 대포라는 무기를 이용해 외계 생물의 본거지를 파괴하려 합니다. 하지만 그러다간 지구의 영혼 가이아가 파괴될지도 모릅니다. 하인 장군의 음모가 진행되는 동안 아키와 그의 옛 남자 친구 그레이는 외계 생물의 정체를 밝히고 그들을 몰아낼 '영혼'을 수집하기 위해 지구를 누비고 다닙니다.

좋은 각본은 아닙니다. 알렉 기네스가 살아있었다면 '멈보점보 중 멈보점보'라고 했을 거예요. 야심은 참 크지만 스토리가 약하고 아이디어도 그저 그렇습니다. 외계인 때려잡기로 끝나는 일반 할리우드 영화에 비해 '성숙해'보일지도 모르지만, 이 역시 뻔하디 뻔한 기존 공식에 의존하고 있어요. 특히 엉겁결에 악당이 된 하인 장군의 캐릭터는 한심할 지경입니다. 대사는 모두 정말 나쁘고요.

듀나 꼭 잘 짜여진 스토리일 필요는 없었어요. 대책없이 흘러가는 스토리는 영화의 악몽같은 분위기에 오히려 더 잘 어울릴 수도 있었지요.

하지만 각본은 그런 식으로 넘기기엔 문제가 너무 많습니다. 마치 B급 일본 애니메이션 각본 같았어요. 쓸데없는 감상에 필요도 없는 비장함을 잔뜩 버무려놓고 그게 마치 진지한 감정인 양 치장하는 그런 분위기 말이에요. 몇몇 비장함은 논리에도 맞지 않습니다. 특히 그레이가 희생을 한답시고 혼자 떠나라고 떠들어대는 장면을 보세요. 그게 무슨 바보 짓이에요? 조금만 부지런 떨면 희생 없이 그냥 탈출할 수 있는데 말이에요. 이런 장면이 너무 많아서 계속 키득키득 웃음이 나와요.

그래도 칭찬해주고 싶은 건 하나 있습니다. [파이널 환타지]는 의식적으로 게임의 스토리를 모방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 때문에 드라마의 가능성이 더 넓어졌어요. 각본이 그 가능성을 활용하지 못한 건 어쩔 수 없지만요.

파프리카 그건 당연한 게 아닐까요? [파이널 환타지]는 [툼 레이더]나 [수퍼 마리오]처럼 캐릭터 위주의 기획은 아닌 걸요. 이 영화의 주목적도 컴퓨터 그래픽 이미지를 창조하는 것이지 액션은 아니었고요.

듀나 [파이널 환타지]의 수명은 얼마나 될까요? 시각적으로 인상적인 영화인 건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동시대 관객들인 우리에게도 충분히 사실적으로 보이는 영화는 아니지요. 아마 10여년의 세월이 흘러 컴퓨터 그래픽이 더 발전하면 무척 낡은 영화로 보일 겁니다. 최초의 컴퓨터 그래픽 영화니 어쩌니 하면서 소란을 떨었던 [트론]처럼 말이에요.

파프리카 얼마 전에 [트론]을 봤는데 꽤 재미있더라고요. 낡은 특수 효과가 가득했지만 오히려 향수가 팍팍 느껴지던데요? [파이널 환타지]도 그런 향수를 자극하는 영화가 될지도 모르지요. (01/07/12)

D&P

기타등등

듀나 [에일리언 2]와 많이 닮지 않았나요? 그레이 일행은 [에일리언 2]의 우주 해병대 그대로고, 아키는 리플리와 비슷한 위치죠. 후반부 탈출 장면은 [에일리언 2]를 그대로 흉내낸 것 같기도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