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정종훈

주연
박은혜....한지연
임호....박형사
이대우....최형사
이명진....김진숙
임현경....우종숙
김재만....서재형
손종범....선배
최윤정....정혜
최성웅....경비원
이안나....여직원

지연

[2월 29일]은 유일한의 호러 단편 시리즈인 [어느 날 갑자기]를 각색한 SBS 4부작 HD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입니다. 굉장히 낯익죠? 그도 그럴 것이 SBS가 [어느 날 갑자기] 시리즈의 각색을 시도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미 1998년에 첫 번째 [어느 날 갑자기] 납량특집 시리즈가 제작된 적 있죠. 그 중 가장 유명한 [스티커 사진] 에피소드는 이나영의 데뷔작이기도 합니다. 하여간 이번 [어느 날 갑자기 - 4주간의 공포]는 기본적으로 98년 시리즈의 개념을 조금 더 확장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해볼 만한 시도냐고요? 네, 해볼 만 하죠. 유일한의 작품들이 히트한 건 [링]이 긴 머리 여자 귀신 클리셰를 보편화시키고 우리 영화계가 그를 받아들이기 이전입니다. 그렇다고 아주 새로운 접근법을 취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 비교적 잘 알려진 옛 단편들을 원작으로 삼아 정공법으로 치면 지금의 매너리즘에서 탈출할 수 있는 가능성의 문이 열립니다. 물론 몇 년 동안 쌓아온 트레이드 마크의 힘을 무시할 수도 없고요.

그럼 슬슬 구체적인 영화 이야기를 해보죠. [2월 29일]의 원작은 [어느 날 갑자기 6]에 수록된 [톨게이트]입니다. 무대가 되는 고속도로 톨게이트는 12년 전 2월 29일에 교통사고가 난 차에서 불타 죽은 여자 연쇄 살인범의 저주가 깃들었다는 소문이 도는 곳이죠. 여자의 악령 때문인지 2월 29일이 끼어있는 해마다 사람이 죽는다는 겁니다. 톨게이트 직원을 대상으로 한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갑작스러운 정전이 일어난 날 밤 검은 차를 탄 수수께끼의 여자를 목격한 톨게이트 직원 지연은 그 뒤로 설명할 수 없는 불쾌한 사건에 시달립니다. 그 중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자기랑 똑같은 옷을 입은 여자가 주변을 맴돌며 그녀를 괴롭힌다는 것이죠. 사람들은 계속 죽어나가고 그날 사건 때문에 촉발된 지연의 어둠에 대한 공포는 점점 강해집니다. 그러는 동안 운명의 2월 29일은 서서히 다가오죠.

물론 관객들은 철저하게 지연의 관점에서 전개되는 이야기가 아주 사실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장화, 홍련]처럼 정신병원에 감금된 환자의 회상으로 시작하는 걸요. 게다가 도입부에선 나레이터인 과학부 기자가 뫼비우스의 띠를 언급하며 분리하기 어려운 두 개의 관점에 대해 뭐라고 지껄이기도 한답니다. 다시 말해 지연의 이야기는 멀쩡한 사람이 겪은 초자연적인 사건의 보고일 수도 있지만 정신질환자의 왜곡된 기억일 수도 있다는 거죠. 영화는 일단 지연의 관점에서 그 이야기를 들려준 뒤, 경찰 보고서에 바탕을 둔 두 번째 관점을 관객들에게 제시해줍니다. 모두 나쁘지 않은 아이디어예요. 최종 결과가 나빠서 그렇지.

최종 결과가 나쁜 이유는 무엇이냐... 대부분 기초적인 것들입니다. 일단 대사들이 아주 나빠요. 자연스럽지가 못하고 억지 혼잣말들이 너무 많죠. 끝도 없이 남발되는 가짜 깜짝쇼나 줌 인 & 트랙 아웃 기법은 이 영화가 처음부터 그렇게까지 대단한 영화적 아이디어를 갖추지 못했다는 증거입니다. 한마디로 추상적인 아이디어에 지나치게 의존한 나머지 그걸 구체화시키지 못한 거죠.

각색의 방향도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닙니다. 유일한의 단편은 대부분 살짝 다듬은 도시전설과 같아요. 캐릭터나 사건들은 대부분 단순하고 평면적이며 전형적입니다. 이런 이야기들은 하이텔 게시판에서 읽을 때는 효과가 굉장히 좋죠. 하지만 영화로 만들 때는 그걸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뭔가를 더 넣어야죠. 이 영화에는 장편영화에 필수적인 디테일이 굉장히 떨어집니다. 그 때문에 임호가 연기한 박형사 같은 캐릭터는 우스꽝스러운 캐리커처처럼 보이기도 하죠. 과학부 기자라는 나레이터와 두 번째 관점을 설명해주는 의사도 군더더기 캐릭터이고 그들을 활용한 액자구성은 영화의 긴장감과 진정성을 떨어뜨릴 뿐입니다. 결정적으로 후반부의 장황한 설명은 그냥 어색하기만 해요.

배우들에 대해서는... 그게 말입니다. 이들은 히트작 [대장금]의 배우들이기도 하지만 [찍히면 죽는다]와 [공포 택시]의 배우들이기도 합니다. 이들이 특별히 나쁜 연기를 펼친 건 아니지만 그래도 과거를 잊긴 쉽지 않군요. 그들 탓은 절대로 아닙니다. 모두 제 탓이죠. 메아 쿨파. (06/07/11)

DJUNA

기타등등

1. 중간중간에 [장화, 홍련] 음악이 나오더군요. 물론 돈 내고 썼겠지만 그래도 좋게 느껴지지는 않더라고요.

2. 엔드 크레딧 끝에 쿠키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