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유상곤

주연
신현준....이현민
송윤아....정선영
김승욱....서형사
조원희....김한수
안석환....윤박사
송재호....송부장
한예린....이진
이주실....현민모
이영미....선영모

선영과 현민

영화를 다 때려잡는 스포일러지만 상관하지 않겠습니다. [유주얼 서스펙트]를 상영하는 극장 앞에서 "아무개가 범인이다!"를 외쳐댔다던 모 관객을 경건하게 모방하며 이렇게 고함지르겠어요. "송윤아는 귀신이다! 송윤아는 귀신이다! 송윤아는 귀신이다!"

괜히 시치미 떼고 손가락질 하지 마시길. 여러분이 이걸 모르고 있었다고 말하지도 마세요. [페이스]는 복안 전문가가 주인공인 귀신 이야기입니다. 정말 이런 영화에서 주인공이 두개골에 유토를 붙여가며 지금까지 살아있는 줄 알았던 사람의 얼굴을 끌어내는 장면이 안 나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까? 그래도 불만이라면 위에 있는 포스터를 다시 한 번 보세요. 저게 스포일러 폭로가 아니라면 뭡니까?

자, 그렇다면 여러분은 이 영화의 드라마가 뻔하디 뻔한 반전 말고도 무언가 더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는데... [페이스]에는 그런 게 없습니다. 정말 없어요. 영화의 모든 요소들이 "아니, 내가 지금 만드는 게 송윤아 얼굴이잖아!" 반전에 몰려 있거든요. 영화가 먹히려면 관객들이 그 장면에서 "세상에 이럴 수가 있나!"하고 놀라야 합니다. 어이가 없어요. 3년 동안 시나리오 작업을 했다는데, 자기네들이 다루는 아이디어가 얼마나 손쉽게 간파될 수 있는지 아직까지 몰랐다니 말이에요.

기본 설정만 따진다면 영화는 "얘가 귀신이래!"말고도 꽤 흥미로운 재료들을 가지고 있기는 합니다. 복안은 여전히 좋은 소재지요. 아내를 잃고 심각한 병을 앓는 딸에게 매달리는 현민의 위치 역시 괜찮고요. 심장이식을 받은 소녀의 아버지가 복안전문가였고 마지막 희생자 역시 같은 전공이었다는 건 조금 억지스러운 우연의 일치지만 역시 괜찮은 각본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영화는 그 어떤 것도 제대로 해내지 못합니다. 가장 낭비된 건 복안이에요. 영화는 이 직업을 정말 종이장 정도의 얄팍한 깊이로 다룹니다. 몇몇 전문 용어들이 등장하고 주인공들이 작업하는 장면이 나오긴 하지만 이 영화의 복안 작업은 기본 설정만한 재미를 주지도 못하고 그 뒤에 숨겨진 무언가를 끄집어내지도 못해요. 이 영화의 복안은 안이한 호기심을 품고 있는 외부인의 나태한 시점에서 바라보는 대상 이상은 아닙니다.

장기이식과 관련된 살인사건을 추적하는 형사물도 별 재미없습니다. 설정에서부터 대사에 이르기까지, 몽유병자처럼 무성의하게 장르 공식을 따라가고 있지요.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이 영화는 정말 대사가 나쁩니다. 왜 우리나라 각본가들은 전문가들의 언어에 이렇게 서툰지 모르겠어요. 자연스러운 대사가 나오려면 꼭 깡패들이 욕을 씹어야 하나?

현민과 관련된 멜로드라마도 애절하기보다는 웃깁니다. 현민과 선영을 연결시키려는 의도가 너무 뻔하고 작가들이 연애물을 쓰는 데 도대체 재주가 없기 때문이지요. 선영의 캐릭터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반전을 위해 작가들은 이 인물을 비교적 무개성적인 커리어우먼 이미지에 끼워맞추고 있는데, 이 때문에 꽤 애절할 수도 있었던 이 이야기의 분위기는 거의 완벽하게 날아가버립니다.

영화의 귀신 논리도 어색합니다. 선영 귀신은 현민에게 선물과 물건들을 가져다주고 녹음 메시지를 남길 수 있을만큼 물리적으로 단단한 존재입니다. 이걸 대충 받아들인다고 해도, 왜 선영 귀신이 밤만 되면 현민에게 그렇게 무서운 모습으로 나타나야 하는지에 대한 답변은 없죠. 왜 입은 적도 없는 소복에, 기른 적도 없는 긴 머리인지는 더더욱 알 수 없고. (귀신 세계 복장 규정일까요?) 그리고 왜, 왜, 왜, 이 영화는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부끄러움도 없이 사다코를 모방만 하는 걸까요? 요란한 배경음악과 함께 화면 속에 사다코를 던져넣는 게 호러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걸까요?

이틀 동안 [령]과 [페이스]를 연달아 접하고 나면 이번 호러영화 시즌이 걱정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매스컴이 떠들어대던 호러영화 붐의 상당부분이 거품이었다는 게 입증되었으니까요. 이들엔 장르에 대한 애정이나 관심은 커녕 최소한의 기본적인 성의도 없습니다. 그냥 호러 영화가 유행한다니까 대충 만들어 한몫 잡으려는 기회주의 이상이 느껴지지 않아요. 앞으로 어떻게 될지 눈앞이 참으로 깜깜합니다. (04/06/08)

DJUNA

기타등등

차라리 [장화, 홍련] 대신 [령]과 [페이스]를 리메이크하면 어떨까 생각 중입니다. 기본 아이디어는 나쁘지 않으니 제대로 만들면 리메이크작이 원작을 능가할 가능성은 충분하죠. 훨씬 생산적인 작업이기도 할 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