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스탠리 큐브릭 Stanley Kubrick

주연
톰 크루즈....윌리엄 "빌" 하포드 박사
Tom Cruise....Doctor William "Bill" Harford
니콜 키드먼....앨리스 하포드
Nicole Kidman....Alice Harford
시드니 폴락....빅터 지글러
Sydney Pollack....Victor Ziegler
토드 필드....닉 나이팅게일
Todd Field....Nick Nightingale
줄리안 데이비스....맨디
Julienne Davis....Mandy
비네사 쇼....도미노
Vinessa Shaw....Domino
마리 리처드슨....매리언
Marie Richardson....Marion
라데 세르베지야....밀리치
Rade Serbedzija....Milich
릴리 소비에스키....밀리치의 딸
Leelee Sobieski....Milich's Daughter
앨런 커밍....데스크 직원
Alan Cumming....Desk Clerk
페이 매스터슨....샐리
Fay Masterson.... Sally
매디슨 이긴튼....헬레나 하포드
Madison Eginton....Helena Harford

[아이즈 와이드 셧]은 작년에 나온 영화들 중 가장 심하게 과대 광고가 된 작품 중 하나입니다. 큐브릭의 유작에다 크루즈/키드먼 커플의 출연을 생각해보면 반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지만, 나머지 반은 관객들을 오도한 마케팅 전술에 책임이 있었습니다. 대부분 영화를 보러 간 사람들은 톰 크루즈와 니콜 키드먼이 화끈한 섹스신을 벌이는 영화를 보러 갔으니까요. 아마 이 영화를 본 반 이상의 관객들이 영화가 끝나면 안 야하고 지루한 영화라고 툴툴거리며 나갔을 겁니다.

그러나 큐브릭이 우리가 기대했던 것처럼 화끈한 영화를 유작으로 남기지 않고 죽었다고 해서 그를 비난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가 이 작품이 자신의 유작이 될 거라는 걸 알았던 것도 아니고, 또 그라고 이 정도 스케일의 작은 영화를 만들지 말라는 법도 없으니까요. 잘못은 엉뚱한 기대를 품은 관객들에게 있었죠.

본론으로 들어가죠. [아이즈 와이드 셧]의 원작은 아르투르 슈니츨러의 26년작 [Traumnovelle]인데, 큐브릭은 20년대 비엔나가 무대인 이 소설의 무대를 현대의 뉴욕으로 옮기고 있습니다. 내용을 아주 짧게 요약해보죠. 우리의 주인공인 의학박사 빌 하포드는 어느 날 아내 앨리스의 성적 환상에 대한 고백을 듣고 약간 정신이 나가게 되는데, 그 날 밤 옛 친구인 피아니스트 닉한테서 신비스러운 혼음 파티에 대한 정보를 듣고 그곳에 몰래 잠입합니다. 영화는 이 파티를 중심으로, 빌이 겪는 이틀 동안의 혼란스러운 모험을 따라갑니다.

이 모험담의 내용을 억지로 따질 필요는 없습니다. 빌의 모험담은 사실보다는 꿈에 가깝고 이야기 전개 역시 꿈의 논리를 따르고 있습니다. 심지어 우리는 이 모든 사건들이 정말로 일어났는지도 확신할 필요가 없습니다. 빌의 머리 속에서만 일어난 일일 수도 있죠. 빌이 아내의 환상 속에서 그동안 안전하고 완벽하다고 느꼈던 자신의 세계가 부서졌다고 느끼고 그 틈새를 파는 과정 중 부서진 세계의 틈이 빌에게 몸을 벌리는 것입니다.

하여간 빌의 모험담은 길고 어두운 회랑을 걷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일종의 롤 플레잉 게임처럼 보일 정도예요. 빌이 앞으로 걸어가면 죽은 남자의 딸이 갑자기 구애를 하거나, 매춘부가 그를 유혹하거나, 괴짜 옷가게 주인이 황당한 행동을 하거나 하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이 영화에서 빌이 하는 것은 그런 일들에 대한 소극적 반응입니다.

이들 중 진짜 성행위로 연결되는 장면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은 섹스로 연결되지요. 누군가 말했듯이 빌이 겪는 모험은 하나의 긴 전희와 같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늘 섹스 직전에 그를 잘라내며 관객들을 감질나게 합니다.

둘째날이 되면 이들은 자신의 실체까지 감추어버립니다. 그에게 구애했던 여자와는 전화 연결이 되지 않고, 섹스 직전까지 갔던 매춘부는 사라지고, 친구는 행방불명되지요. 빌은 제대로 뭔가 저지르지도 않았으면서도 죄책감을 느끼며 가족으로 돌아옵니다. 그 동안 벌어진 불신의 틈을 애써 무시하려 하면서요.

이런 이야기가 20세기 말의 뉴욕과 맞아 떨어질까요? 글쎄요. 아주 맞지는 않습니다. 사실 빌과 같은 요새 사람이 아내의 성적 환상 정도로 그처럼 충격을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중반부의 혼음 파티는 현대 미국이라는 곳에서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완전히 떨어져 있고요.

하지만 그런 불일치는 이 영화의 꿈과 같은 분위기를 생각해보면 오히려 당연합니다. 현대 미국을 다루는 사실적인 이야기처럼 시작되는 영화가 서서히 꿈 속의 세계로 들어서는 것이죠. 일부러 삼원색을 강조한 화면 처리와 스튜디오 촬영이 주는 인공적인 느낌 덕택에 영화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슈니츨러 버전을 보는 느낌까지 줍니다. 편집 도중 감독이 죽은 탓인지 종종 편집이 거칠고 이상하지만, 영화는 스타일리스트로서의 큐브릭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배우에 대해서 말하자면... 톰 크루즈는 그렇게 적역은 아닙니다. 빌의 역할은 대부분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소극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인데, 이런 경우는 보다 표정이 풍부하고 평범한 외모의 배우가 더 어울리지요. 젊은 시절의 안소니 홉킨즈가 막 떠오르는군요(20년대 배경을 그대로 살렸으면 더 어울렸을 겁니다.) 크루즈는 빌의 캐릭터를 커버하기엔 연기폭이 너무 좁습니다.

키드먼은 보다 재미있습니다. 이 배우가 종종 그렇듯이 필요 이상으로 연극적이긴 하지만 원래 그렇게 사실적인 영화가 아니니까 상관 없습니다. 키드먼은 일종의 사도매저키스틱한 연극을 하면서 즐기는 것 같습니다.

조연들은 주연 배우들보다 더 재미있습니다. 가장 먼저 눈에 뜨이는 사람은 지글러를 연기한 시드니 폴락인데, 그의 자연스러운 일상성 때문에 영화의 초현실적인 분위기가 더 힘을 얻습니다. 앨런 커밍이나 마리 리처드슨, 릴리 소비에스키, 라데 세르베지야도 엉뚱한 재미가 있고요.

[아이즈 와이드 셧]의 평가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많은 평론가들은 입과 마음이 따로 노는 듯 합니다. 아직까지 큐브릭의 명성과 그의 죽음이 남긴 충격이 큰 것이겠죠. 하지만 큐브릭이라는 남자를 진정으로 알고 있는 팬들에겐 결코 모자란 성찬은 아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00/09/29)

DJUNA

기타등등

원작인 슈니츨러의 소설은 [꿈의 노벨레]라는 제목으로 문지사 스펙트럼 문고에서 나와 있고, 얼마 전에 번역된 관련 서적 [아이즈 와이드 오픈]에도 수록되어 있습니다. 비율을 생각하면 수록이라는 말이 좀 우습긴 합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