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앤디 테넌트 Andy Tennant

주연
드류 배리모어....다니엘
Drew Barrymore....Danielle
안젤리카 휴스턴....로드밀라
Anjelica Huston....Rodmilla
더그레이 스코트....헨리 왕자
Dougray Scott....Prince Henry
패트릭 고드프리....레오나르도 다 빈치
Patrick Godfrey....Leonardo da Vinci
미건 도즈....마르그리트
Megan Dodds....Marguerite
멜라니 린스키....자클린
Melanie Lynskey....Jacqueline
잔느 모로....노부인
Jeanne Moreau....Grande Dame

1.

[에버 애프터]는 저희에게 매우 친숙한 느낌을 주는 영화였습니다. 세상이 다 아는 [신데렐라] 이야기를 원작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 영화가 전매 특허로 내세우는 '정치적으로 공정한' 접근법 때문이었지요.

이런 접근법으로 각색한 동화는 그렇게 드물지 않습니다. 오히려 꽤 많다고 해야겠지요. 대표적인 예는 [셜리 듀발의 동화극장]입니다 (A&C에서 [판도라 스페셜]이라는 제목으로 한 동안 방영한 적도 있었지요.) [에버 애프터]처럼 화끈하게 놀지는 않았을지 몰라도, [동화극장]의 에피소드들도 모두 나름대로 정치적으로 공정해지려고 노력하고 있었지요. 그 시리즈가 풍기는 어색할 정도로 모던한 느낌 역시 그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접근법으로 각색하는 것이 나쁘다는 소리는 하지 않겠습니다. 오히려 바람직한 일입니다. 성차별과 계급차별로 가득 찬 이야기들을, '순전히' 고전이라는 이유만으로 생각없이 아이들의 귀에 들이붓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일일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이런 접근법은 원작에 흥겨운 뒤틀림을 주어서 원작의 향취를 새롭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미적인 측면에서 보았을 때, 이런 식의 각색은 상당히 위태롭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시네 21]에서 저희가 한 번 이야기한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신데렐라]나 [백설공주]같은 이야기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은 왕자 만나 구원받는 스토리에 봉사하기 위해 디자인된 것이기 때문에, 주제라고 할 만한 이 덩어리를 바꾸면 작품 자체의 균형이 흔들리게 됩니다.

이 사태를 해결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패러디인데, (베스트셀러였던 [정치적으로 공정한 베드 타임 스토리] 시리즈가 바로 그 대표적인 경우였습니다) 이 방법은 너무나도 손쉬워서 쉽게 진부해집니다. 게다가 [에버 애프터]와 같은 영화엔 어울리지 않지요.

아주 진지하게 처리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방법을 밀고 나간다면 또 하나의 코미디를 만드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이번 경우는 의도하지 않았던 웃음을 유발하는 꼴이 되므로 앞의 경우보다 더 나쁘죠. 간신히 코미디를 피해도 뻣뻣한 정치 교과서로 떨어질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2.

[에버 애프터]는 어땠을까요? 이 영화는 반쯤 진지한 접근법을 취했습니다. 드류 배리모어가 연기한 여주인공 다니엘은 마치 페미니즘 강의를 막 듣고 집으로 돌아온 대학교 1학년생처럼 열심히 그리고 노골적으로 자신의 건전한 생각을 실천에 옮기는데, 이런 모습이 16세기 프랑스라는 시대 배경과 어울리지 않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영화가 실제 역사적 배경에 아주 충실할 생각이 없으므로 (배우들의 영국식 영어나 프랜시스, 헨리와 같은 영어식으로 개조된 이름들은 이 영화의 시대 배경을 아직 언어 분화가 충분히 일어나지 않았던 저 먼 동화의 영역으로 돌려버립니다) 그렇게까지 불편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에버 애프터]가 나름대로 성공했던 진짜 이유는, 이 영화가 정치적으로 공정하려고 했기 때문이 아니라, 이런 정치적 공정성이 다니엘이라는 캐릭터에 에너지를 더해주는 구실을 했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은 '정치적으로 공정한 90년대식 캐릭터'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활기차고 강렬하며 재미있는 인물입니다.

이들의 공정해지려는 노력은, 우아한 마네킹과도 같았던 원래의 캐릭터들의 몸 속에 신선한 피를 부어넣었습니다. 다니엘은 신데렐라 넘버 75번이 아니고 헨리 왕자도 프린스 차밍 53번이 아닙니다. 심지어 로드밀라나 마르그리트, 자클린도 못된 계모 92번이나 못된 의붓 언니 25번, 26번이 아닙니다. 모두 나름대로 믿을만한 성격과 그럴싸한 동기를 가지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내숭 떠는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 결과, 관객들은 이 영화를 신데렐라와 일부러 연결짓지 않아도 될만큼 독립적이고 활달한 로맨스 영화로 볼 수 있습니다. 주인공들은 감정이입될 수 있는 정도로 충분히 매력적이고 일어나는 사건들도 나름대로 빠르고 박진감 넘치니까요. 레오나르도 다 빈치나 그림 형제와 같은 실제 인물이 끼어드는 걸 보는 재미도 나쁘진 않고요. 물론 내용 전개가 셜리 듀발 풍이고, 배경도 어딘가 디즈니랜드 같기는 하지만, 관객들도 그런 세계를 인정하고 넘어가니 무슨 상관이겠어요.

3.

드류 배리모어는 사극과 어울리는 배우가 아닙니다. 그런 걸 하기엔 지나치게 친근하고 현대적이죠. 그러나 [에버 애프터]에서는 나름대로 잘 맞습니다. 그건 애당초부터 다니엘이라는 캐릭터가 그런 현대적인 이미지의 배우를 요구하는 역이었기 때문입니다.

안젤리카 휴스턴은 그 등장부터 의미심장하고 음흉함과 적당한 사악함을 뒤섞은 그의 계모 연기가 너무나도 그럴싸해서 참견의 여유를 주지도 않습니다.

고백하지만 저희가 이 영화를 보러 간 진짜 이유는, 배리모어나 휴스턴 때문이 아니었답니다. 의붓 언니 2번을 연기한 멜라니 린스키가 [천상의 피조물 Heavenly Creatures] 이후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해서였죠. 뭐, 그 동안 많이 예뻐졌더군요. [프라이트너즈]에서 잠시 나온 부은 얼굴을 보고 얼마나 걱정했었는데요. 그리고 린스키가 연기하는 맹한 의붓언니도 귀여워요. (99/01/16)

D&P

기타등등

1.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모나리자]를 나무판에 그렸습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캔버스에 그린 것으로 나오더군요. 왜 이런 노골적인 실수가 시정되지 않았던 걸까요? (하지만 레오나르도가 왼손잡이란 것을 잊지 않았던 건 반갑군요.)

2. 영화 속에 나오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물신발'은 진짜 세계에선 뜰 수가 없습니다. 그 정도 크기의 나무 구두로는 충분한 부력을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3. 이 별점 평가의 내용 일부는 영화 낙서란의 [정치적으로 불공정한 존재로서의 예술]에서 반복, 확장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