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제로 추 Zero Chou

주연
백지령....메이
Pai Chih-Ying....May
방사유....징
Serena Fang....Jing
육의정....릴리
Yi-Ching Lu....Lily
샘 왕....옌
Sam Wang....Yen
조일람....디에고
Chao Yi-lan....Diego

징과 디에고

[표랑청춘]은 3부작 옴니버스 영화입니다. 이들 에피소드는 캐릭터들의 연관관계에 의해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지만 꼭 그걸 인식하고 볼 필요는 없습니다.

첫 번째 에피소드의 주인공은 징과 메이라는 자매입니다. 징은 중화권 멜로드라마 청순가련 여자주인공의 에피토메라고 할 수 있는 인물입니다. 나쁜 생각은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고, 가슴엔 사랑과 슬픔만이 가득 차 있으며, 식당에서 노래를 부르는 게 직업인데 시각장애인이라네요! 징은 지금까지 스스로의 힘으로 여덟 살 짜리 동생을 키워왔지만 아무래도 이렇게 계속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결국 위탁가정이 대안이 되지요. 이를 악물고 사랑하는 동생을 남의 손에 맡겨야 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게 엉뚱하게도 삼각관계의 발단이 됩니다. 메이는 새로 식당에 들어온 아코디언 주자 디에고를 짝사랑하기 시작했고 디에고는 청순가련 징에게 눈길을 주고 있는데, 메이의 논리에 따르면 언니가 갑자기 자기를 위탁 가정에 보내는 건 자기 방해 없이 디에고와 데이트를 즐기기 위해서인 거죠. 메이는 언니에게 반항하기 시작하고 그 결과는 아주 위험할 수도 있는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첫 번째 에피소드는 세 편 중 가장 길고 아기자기하고 스토리가 분명합니다. 가장 재미있다고 할 수 있겠죠. 어른들의 멜로는 다소 편리한 소원성취로 흘러가는 경향이 있지만 메이의 성격 묘사는 뛰어납니다. 백지령의 연기 역시 귀엽고 섬뜩하며 재미있어요. 이 아가씨는 [스파이더 릴리]에서 어린 사오뤼를 연기했던 배우인데, 두 편의 영화에서 모두 목적의식과 취향이 분명한 무서운 꼬마 역할을 맡았더군요.

두 번째 에피소드는 이 영화에서 가장 암담하고 구질구질합니다. 영화의 여자주인공인 릴리(수리엔)는 알츠하이머에 걸렸고 남자주인공 옌은 HIV 보균자거든요. 이들은 오래 전에 위장결혼한 부부사이로 둘 다 모두 동성애자입니다. 하지만 릴리의 여자친구는 죽었고 옌의 남자친구는 옌을 차버렸죠. 이제 그들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서로밖에 없습니다.

분명 컴컴한 이야기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에피소드는 코미디입니다. 알츠하이머 때문에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릴리가 옌을 죽은 여자친구라고 착각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걸 하나하나 받아주어야 하는 옌의 상황이 그렇게 우아하고 깔끔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영화의 결말도 생각보다는 밝습니다. 결국 아무리 이렇게 바닥을 치는 상황을 맞아도 사랑은 삶의 의미를 제공해줄 수 있다고 말하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전 이 에피소드를 보면서 다소 집중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나이 문제 때문이었지요. 두 번째 에피소드는 징과 디에고가 릴리와 옌의 결혼식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연결이 됩니다. 아마 첫 번째 에피소드는 90년대 초중엽에 일어난 일일 거고요. 하지만 그렇게 계산하면 옌과 릴리는 지나치게 나이가 많습니다. 그들의 건강이 그렇게 좋지 못하다는 걸 고려해도 말이죠.

세 번째 에피소드는 1편에 잠시 등장했던 디에고의 고등학생 시절 이야기입니다. 디에고는 가족이 운영하고 있는 인형극단의 일원이고 자신의 성정체성과 성적취향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그녀는 같은 시장에서 야한 쇼를 하는 젊은 시절의 릴리를 만나죠.

이 에피소드는 스토리만 따지면 가장 빈약합니다. 사실 이 이야기가 어디로 흐르는 것도 아니고 그럴 수도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워낙 퀴어 영화 장르에서 자주 판 분야이니 디에고의 고민도 어딘가에서 다 들어본 이야기일 수밖에 없고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에고의 고민은 정확하고 정직하게 그려지고 있고 이를 담아내는 조일람의 연기도 신선하고 진정성이 넘칩니다.

[표랑청춘]은 [스파이더 릴리]의 화려한 로맨티시즘을 기대하고 볼 영화는 아닙니다. 옴니버스의 형식 때문에 스토리와 캐릭터가 비교적 단순할 수밖에 없는 작품이고요. 하지만 무엇을 기대해야 하는 지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가지고 본다면 이 영화에 담겨 있는 세 편의 에피소드들은 모두 자기 역할을 합니다. (09/04/14)

DJUNA

기타등등

두 번째 에피소드에 [스파이더 릴리]의 포스터가 나오는데요... 배우들이 남자 두 명으로 바뀌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