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여균동

주연
이정재....천둥
김옥빈....설지
김석훈....만득
이원종....칠갑
여균동....짝귀

설지

[1724 기방난동사건]. 제목 그대로 경종 말기 한양의 모 기방에서 난리가 났다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난리를 친 건 양주파와 야봉파라는 깡패집단이에요. 안 일어나도 되는 싸움이었는데, 초반에 일이 좀 꼬였죠. 양주파의 보스인 짝귀가 마포 깡패 천둥과 싸우다 인사불성이 되고 엉겁결에 천둥이 짝귀 자리를 잠시 맡게 된 겁니다. 당시 깡패들이 모임을 갖던 매월향이라는 기방엔 천둥이 좋아하는 설지라는 기생이 있었는데, 그 때문에 거기서 말과 행동을 막 하던 천둥이 그만 매월향의 주인이고 야봉파의 보스인 만득과 붙게 된 거죠.

여균동 감독의 말에 따르면 이 영화는 ‘조선시대에 조폭들이 있었다면 어땠을까?’라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고 합니다. 이걸 꼭 아이디어로 낼 필요가 있었는지 모르겠어요. 약간의 풍속학적 자료만 조사해도 당시 이런 부류들의 인간들이 실제로 존재했다는 걸 알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럼 전 자동적으로 이렇게 생각하게 되는 거죠. 아이디어를 내기도 전에 이미 그런 부류가 존재하고 있다면 그들이 어떤 인간들이었는지 연구하고 그들의 모습을 일부나마 재현하는 게 21세기 조폭들처럼 행동하는 18세기 깡패들을 만드는 것보다 더 재미있지 않을까? 전 그렇다고 생각하는데, 감독 생각은 달랐던 모양입니다.

여균동이 그린 1724년의 한양은 적응하기 쉽지 않은 곳입니다. 우리가 아는 조선 시대 후기의 모습을 거의 찾아볼 수 없어요. 기생 설지는 그럭저럭 우리에게 익숙한 기생 복장을 비슷하게나마 흉내라도 내고 있고 대사도 절반 정도는 사극투를 유지하고 있지만, 이정재의 천둥이나 김석훈의 만득은 지리적으로 보나 시대로 보나 이 시대와 어울리지 않아요. 그들 주변을 맴도는 깡패들도 마찬가지고. 이들은 그냥 21세기에서 타임머신타고 온 깡패들이에요. [쾌도 홍길동]하고 비슷하냐고요? 훨씬 더 심해요. 이 영화에 비하면 [쾌도 홍길동]은 정극이죠. 정말 정극이에요.

이들의 이야기는 그냥 조폭물입니다. 스토리는 약간 구식이어서 [장군의 아들] 분위기를 풍기긴 하는데, [장군의 아들] 시리즈 역시 조폭물인 건 마찬가지죠. 늘 욕을 입에 달고 다니고 주먹질과 칼질 이외에 할 줄 아는 것이 없는 기생충 같은 남자들이 영화 내내 주먹질을 하고 여자 뒤를 따라다닙니다. 제가 이런 인간들을 좋아해야 할 이유가 없지요. 천둥이 영화 내내 아무리 노력을 해도 주인공의 위치에 어울리는 매력이나 무게감을 얻게 되는 것은 아니고요.

영화는 [화산고]처럼 컴퓨터 그래픽을 잔뜩 쓴 과장된 액션으로 일관하고 있는데, 그리 보는 재미는 없습니다. 액션의 안무는 단순하고 대부분 일대일 주먹질이거든요. 아무리 속도를 늦추고 뒤에 비현실적인 배경을 깔아도 주먹질은 그냥 주먹질이죠.

전 조폭들의 전쟁보다는 김옥빈이 연기한 기생 설지를 따라가는 게 더 재미있었습니다. 설지의 ‘춤추면서 용그리기’는 이 영화가 제공해주는 가장 좋은 스펙터클이고요. 하지만 종종 감정의 흐름이 지나치게 인위적이라 캐릭터 자체를 즐기는 재미는 없습니다. (08/11/18)

DJUNA

기타등등

왜 1724년이냐. 영화 후반부에 보면 이 해를 선택한 이유가 대충 밝혀지긴 합니다. 하지만 대단한 의미는 없어요. 그 장면도 구체적인 숫자를 제목에 넣기 위한 변명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