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장웬 Wen Jiang

주연
장웬....마다산
Wen Jiang....Ma Dasan
장홍보....유아
Hongbo Jiang....Yu'er
카가와 테루유키....하나야 코사부로
Teruyuki Kagawa....Kosaburo Hanaya
유안딩....동한첸
Ding Yuan....Dong Hanchen
공진준....할아버지
Zhijun Cong....Grandfather

(결말을 암시하는 스포일러가 조금 있습니다.)

유아와 다산

[귀신이 온다]는 [햇빛 쏟아지던 날들]로 거장의 싹을 보여주었던 장웬(강문)의 두번째 감독작입니다. 하지만 [햇빛 쏟아지던 날들]의 나른한 아름다움에 푹 빠져있던 관객들은 영화 보기 전에 조금 긴장하시길. [귀신이 온다]는 전작과 극을 달리는 작품입니다. 오히려 내용만 따진다면 그의 출연작이었던 [붉은 수수밭]에 더 가깝습니다. 그보다 훨씬 입체적이고 흥미진진한 작품이지만요.

영화는 1945년 일본군에게 점령된 중국의 작은 마을에서 시작합니다. 영화 초반부엔 일본군과 마을 사람들은 비교적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습니다. 전쟁의 여파가 거기까지 몰려오지 않았으니 일본군들은 할 일이 없고, 마을 사람들도 대충 앞에서 굽실거리고 뒤에서 욕하는 식으로 실리와 자존심 사이에서 어정쩡한 균형을 잡으며 살아가고 있죠.

그러나 동네에 끔찍한 일이 일어납니다. 정체불명의 남자 한 명이 일본군 병장과 중국인 통역관을 자루에 담아 짊어지고 와서 동네 사람에게 맡겨놓고 사라진 거죠. 며칠 뒤에 돌아올테니 그 동안 심문이나 해놓으라고요.

동네 사람들에게는 카프카적 악몽이 따로 없습니다. 아니, 카프카보다 더합니다. 형이상학적인 고뇌 따위가 아닌 동네의 운명이 걸린 현실적인 문제니까요. 게다가 왜 이리 결정을 내리기가 힘이 드는지. 포로를 풀어주자니 그 남자가 겁이 나고, 그렇다고 계속 가두어두자니 언제 들통날지 모르며, 그렇다고 죽이자니 그럴만큼 배짱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여러분 같아도 미치겠죠? 결정적으로 그 정체불명의 남자는 반 년이 지나도 돌아올 생각을 안합니다.

결국 두 명의 포로들은 엄청난 희비극적 드라마로 관객들과 마을 사람들을 몰아넣습니다. 드라마의 대부분은 포로들이나 마을 사람들 모두 충분히 잔인하지도 못하고 영웅적이지도 못하며 그렇다고 진짜 겁쟁이도 아닌 어정쩡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끊임없이 사람들을 극한의 선택으로 몰아붙이는 상황 속에서 이들의 감정은 극을 달리며 덕택에 드라마의 폭도 한없이 넓어집니다. 이들의 이야기는 종종 눈물이 날 정도로 웃기고 어떤 부분에는 처절할 정도로 비극적입니다. 전체적으로 다들 굉장히 맘에 와닿습니다. 모든 게 너무나도 인간적이거든요. 어리석지만 인간적입니다.

[귀신이 온다]는 완벽한 영화가 아닙니다. 맘만 먹으면 단점들은 끝도 없이 뽑아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결말에 이르는 후반부가 지나치게 길다고 지적할 수 있습니다. 후반 40분에서 갑자기 변하는 분위기 때문에 예술적 단절을 느끼는 관객들도 있을 거고요.

하지만 애당초부터 [귀신이 온다]는 완벽한 영화를 의도한 작품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런 거칠고 투박한 모양이 전체적인 스토리와 맞을 수도 있습니다. 후반부에서 단절감이 느껴진다고 말했지만 원래 감정 폭이 넓은 영화라 큰 문제는 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이런 이야기에 익숙한 동양 관객들이라면 제2차 세계대전을 무대로 한 일본군 관련 영화를 보면서 이 정도 결말은 예상하기 마련입니다. 영화의 희극적 측면도 그런 걸 고려하고 짜넣은 것이고요.

중국 정부에서는 [귀신이 온다]를 상영금지하고 장웬에게 7년 작업 금지령을 내렸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가장 큰 이유는 장웬이 허가도 없이 칸느에 자기 작품을 출품했다는 거죠. 하지만 중국 인민을 겁쟁이로 묘사하고 일본군을 미화했다는 게 진짜 이유입니다.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하겠습니다. 마지막 장면을 보고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요? 단지 그들은 생기없는 캐리커처에서 벗어난 입체적인 존재로 그려졌을 뿐입니다. 동네 사람들 묘사 역시 당연하기 그지 없습니다. 아마 그쪽 검열관들은 공산당 선전 포스터에 그려진 것 같은 애국적 영웅들이 짐승같은 일본군을 때려잡는 내용 이상은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하긴 인간을 인간으로 보지 못하고 자신의 나약함과 어리석음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예술 작품이 무슨 소용이겠어요. (01/09/13)

DJUNA

기타등등

1. 조상구 번역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엔 정말 중국어 번역 실력이 있는 사람이 그렇게 드문 겁니까? 다행히도 더 자세한 영어 자막이 따로 달려 있어서 도움이 되었답니다.

2. 오대위가 중국군 장교로 나오더군요. 그 사람 특유의 유쾌한 경박함이 너무 잘 어울려서 한동안 쿡쿡거리며 웃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