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존 슐레진저 John Schlesinger

주연
케이트 베킨세일....플로라 포스트
Kate Beckinsale....Flora Poste
아일린 앳킨스....주디스 스타캐더
Eileen Atkins....Judith Starkadder
이언 맥켈런....에이모스 스타캐더
Ian McKellen....Amos Starkadder
루퍼스 슈얼....세스 스타캐더
Rufus Sewell....Seth Starkadder
이반 케이....루벤 스타캐더
Ivan Kaye....Reuben Starkadder
쉴라 버렐....에이다 둠
Sheila Burrell....Ada Doom
조애너 럼리....메리 스마일링
Joanna Lumley....Mary Smiling
머라이어 마일즈....엘핀 스타캐더
Maria Miles....Elfine Starkadder
스티븐 프라이....마이버그(마이어버그)
Stephen Fry....Mybug(Meirberg)
프레디 존스....아담 램스브레스
Freddie Jones....Adam Lambsbreath
미리엄 마골리스....비틀 부인
Miriam Margolyes....Mrs. Beetle
제레미 피터즈....어크
Jeremy Peters....Urk
크리스토퍼 보웬....찰스 페어포드
Christopher Bowen....Charles Fairford
루이즈 리....메리엄 비틀
Louise Rea....Meriam Beetle
소피 리벨.....르넷
Sophie Revell....Rennet

1.

갑자기 고아가 된 소녀가 시골에 사는 친척집에 머물게 된다는 이야기에서 어떤 영화가 연상되세요? 아마 [폴리애너]나 [빨간 머리 앤]과 같은 내용이 아닐까요? 활발하고 매력적인 여자 주인공이 프린스 에드워드 섬과 같은 경치 좋은 시골에 머물면서 주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든다는 기분 좋은 이야기 말이에요.

하지만, 이 영화의 무대가 프린스 에드워드 섬이 아닌 서섹스의 다 허물어진 농장이며, 친척들은 모두 토머스 하디나 디킨즈 소설에나 나올 것 같은 음울한 괴물들이라면? 아마도 순진한 고아 소녀가 친척집에 들어와 죽도록 고생한다는 디킨즈식 이야기가 아닐까요?

하지만, 만약 이 영화의 주인공이 말만한 다 큰 처녀이며, 엄청나게 머리가 좋은데다가, 지저분하고 정리되지 않은 것들을 참지 못하는 성격이라면? 그리고 정말 이 음울한 친척들을 자기 맘대로 '정리'하려 든다면? 여러분, 콜드 콤포트 농장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2.

이 지극히 못돼먹은 코미디의 원작은 스텔라 기븐즈가 쓴 동명의 소설입니다. 책 역시 영화만큼이나 뻔뻔스럽게 못됐어요. 아니, 영화를 능가하죠. 농담의 기둥에 직접 뿌리를 박고 있으니까요.

[콜드 콤포트 팜]은 [못말리는 비행사]만큼이나 노골적인 문학적 농담입니다. 기둥은 다음과 같죠. 콜드 콤포트 농장에는 19세기 중엽부터 20세기 초 사이에 쓰여진 영국 소설들(특히 토머스 하디랑 D.H. 로렌스)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캐릭터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세계에 갑자기 제인 오스틴 소설의 주인공(짐작하셨겠지만 이 영화의 주인공 플로라는 20세기 버전 엠마입니다)이 뛰어듭니다!

이 결과 발생하는 충돌은 참 얄밉습니다. 오리지널 소설들의 심각성이 무참할 정도로 파괴되니까요.

예를 들어보죠. 여기 새디스틱한 종교적 광신자가 있습니다. 보통 소설에서라면 자신의 미치광이같은 신념으로 주변 사람과 자신을 파괴하겠지요. 그러나 이 영화에선 그런 일이 없습니다. 우리의 똑똑한 주인공 플로라는 그 광신자를 유명한 순회 전도사로 만드니까요. 욕구에 약한 자신의 육체를 한탄하며 줄기차게 사생아를 낳아대는 시골 처녀가 있습니다. 또다른 시골의 비극일까요? 천만의 말씀. 우리의 주인공은 이 시골 처녀에게 가족 계획과 피임법을 가르칩니다. 신사 계급의 아들을 사랑하는 농장 아가씨가 있습니다. 골즈워디 소설에서처럼 버림받고 자살할까요? 천만의 말씀. 플로라는 이 아가씨를 갈고 닦아 자기만큼이나 속물로 만들어 무도회에 내보냅니다.

끝도 없습니다. 플로라는 콜드 콤포트 농장 사람들을 단 한 명도 빼놓지 않고 멋대로 자기식으로 개조합니다. 그것도 완벽하게요. 빅토리아 시대의 음울한 비극은 20세기의 이성과 과학에 의해 박살납니다.

예술에 대한 모독이라고요? 하지만 뭐 어때서요? 원래 비극은 어리석음과 무지의 결과입니다. 만약 우리가 플로라 포스트 식으로 완벽하게 사태를 제어할 수 있다면 뭣하러 비극 속에 몸을 담궈야 하나요?

물론 '플로라 포스트 식'이라는 말에 함정이 숨어 있습니다. 플로라는 어떤 인간적 이해나 동정심 때문에 이런 일을 하는 건 아니거든요. 플로라는 순전히 자기가 재미있어서 거의 강간하다시피 이들에게 선행을 멋대로 베풉니다. 얄밉게 똑똑한 도시 여자가 순진무구한 시골 친척들을 체스말처럼 가지고 노는 거예요. 그리고 이 영화의 진짜 재미는 플로라에게 농락 당하는 친척들을 보며 느끼는 새디즘에 있습니다.

3.

[콜드 콤포트 팜]에는 어떤 종류의 인간적 깊이도 없습니다. 농장 친척 사람들은 모두 캐리커처들이고, 플로라도 너무나 똑똑하고 유능해서 엠마처럼 자신의 실수를 통해 인간적 성숙을 이룰 기회가 없거든요.

그런데도 영화는 근사한 연기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아일린 앳킨즈, 쉴라 버렐, 이언 맥컬런과 같은 도가 튼 배우들이 이 캐리커처들을 기가 막히게 연기해내니까요. 다들 능구렁이처럼 잘해서 우열을 가리기가 힘들지만, 어마어마한 서섹스 사투리로 신도들에게 불과 지옥의 저주를 퍼부어대는 맥켈런 영감은 특히 웃겨요.

물론 이 모든 코미디들의 기둥은 플로라 역의 케이트 베킨세일입니다. 이처럼 잘 캐스팅되기도 힘들 거예요. 베킨세일의 소년같이 신선하고 결백한 이미지는 플로라 포스트의 직설적인 음모가 성향과 기가 막히게 잘 어울리고, 그녀의 타고난 스노비즘도 이 캐릭터의 새디즘을 완벽하게 표현해내는 도구가 됩니다.

4.

존 슐레진저의 이 경쾌한 코미디는 결코 진지한 노력의 결과가 아닙니다. 영화는 텔레비전 용으로 먼저 제작되었고 그 뒤에야 극장에서 개봉되었지요.

하지만 [콜드 콤포트 팜]은 최근 나온 슐레진저의 그 어떤 영화보다도 신선하고 성공적인 작품입니다. 그도 슬슬 이쪽 물을 팔 때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 적어도 [미드나잇 카우보이]식 슐레진저 영화들은 바닥을 드러내고 있으니까요. (99/10/18)

DJUNA

기타등등

세상이 다 아는 게이 배우인 스티븐 프라이가 로렌스주의자인 작가 마이버그(마이어버그)로 나온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