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크리스토퍼 햄튼 Christopher Hampton

주연
엠마 톰슨....도라 캐링턴
Emma Thompson....Dora Carrington
조나단 프라이스....리튼 스트래치
Jonathan Pryce....Lytton Strachey
스티븐 워딩턴....레이프 패트리지
Steven Waddington....Ralph Partridge
새무얼 웨스트....제럴드 브레넌
Samuel West....Gerald Brenan
루퍼스 슈얼....마크 거틀러
Rufus Sewell....Mark Gertler
페넬로페 윌튼....레이디 오톨라인 모렐
Penelope Wilton....Lady Ottoline Morrell
자넷 맥티어....바네사 벨
Janet McTeer....Vanessa Bell
피터 블라이스....필립 모렐
Peter Blythe....Phillip Morrell
제레미 노덤....비커스 펜로즈
Jeremy Northam....Beacus Penrose
알렉스 킹스턴....프랜시스 패트리지
Alex Kingston....Frances Partridge
세바스찬 하콤브....로저 신하우스
Sebastian Harcombe....Roger Senhouse
리처드 클리포드....클라이브 벨
Richard Clifford....Clive Bell

1.

마이클 나이먼의 음악이 깔리는 동안 조나단 프라이스와 엠마 톰슨이 강한 영국 악센트로 지껄이는 대사들이 들려옵니다. 물론 배경은 '문명화된 영국식 시대극'이 득실대는 20세기 초엽입니다. 이쯤 되면 우리는 지금부터 봐야 할 영화가 어떤 작품인지 알 수 있게 되죠. 그리고 [캐링턴]은 그 예측에서 단 한치도 어긋나지 않습니다. 이런 영화들도 이미 장르화가 된 모양이에요.

2.

'문명화된 시대극'은 속물 근성을 피할 수가 없는 조금 얄미운 장르입니다. 하지만 이런 장르의 작품을 만드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좋은 서스펜스 영화를 만드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런 영화는 시시하게 만들어도 사람들이 꼬이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문명화된 시대극'은 그런 관객들한테 의지할 수 없습니다. 애당초부터 기본 관객들이 소수이고 그들의 질(그들이 모두 생각없는 속물들이라고 하더라도)이 결코 낮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일단 기본기는 갖추고 들어가야 한다는 거죠. 그 중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막강한 인문학적 교양을 바탕으로 깐 각본입니다. 루스 프라워 자발라의 아름다운 각본들이 없었다면 아이보리 영화가 존재할 수 있었을까요?

햄튼의 [캐링턴] 각본은 분명 그의 가장 잘된 작품들 중 하나입니다. 이 각본에는 [토탈 이클립스]에서 볼 수 있었던 그의 모호한 프랑스 취향도 없고 [메리 라일리]처럼 안이하지도 않습니다. 일단 매우 영국적인 소재에 매우 영국적인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점수를 따고 들어갔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3.

블룸즈버리 패거리들에 대한 책들이 여전히 쏟아져 나오고 그들의 이야기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꾸준히 각색되는 걸 생각해보면, 그네들의 삶에 여전히 우리들의 관심을 끌만한 부분이 있는 모양입니다. 그들이 유달리 파격적이었기보다는 그들의 삶이 오히려 우리 시대의 삶과 더 잘 어울리기 때문일지도 모르죠. 역사의 때가 한겹 입혀져 그들의 현대식 행동이 더 로맨틱하게 보여서일지도 모르겠고요. 결국 우리가 관심을 가지는 건 리튼 스트레치와 도라 캐링턴, 버지니아 울프와 비타 새크빌 웨스트 같은 사람들의 별난 연애담이니까요.

[캐링턴]이 집중하는 것도 바로 그런 것입니다. 이 영화는 호모섹슈얼인 남성과 바이섹슈얼인(영화 속에서는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지만) 여성간의 기나긴 플라토닉 러브에 대한 이야기니까요. 그 결과 이 영화는 참으로 다양한 종류의 사랑을 쇼윈도우에 넣고 펼쳐보일 수 있는 기회를 얻습니다. 리튼의 캐링턴에 대한 플라토닉한 사랑, 캐링턴이 리튼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룰 수 없는 육체적 욕망, 캐링턴과 레이프의 육체적 사랑, 제럴드 브래넌의 캐링턴에 대한 로맨틱한 사랑. 기타 등등 기타 등등. 영화 후반부에 캐링턴은 거실로 나와, 그녀의 남편, 애인, 플라토닉한 남자 친구들이 사랑을 나누는 광경을 지켜보는데 이는 햄튼의 이러한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고 할 수 있죠 (그 자체가 장관이긴 합니다만.)

4.

하여간 리튼 스트레치는 그 자체로 재미있는 인물이니, 햄튼이 아니었더라도 누군가 그 사람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 같은 걸 언젠가 만들고 말았을 겁니다. 그 시기가 늦어졌다면 그가 그렇게 호감가는 외모의 소유자가 아니었기 때문이겠죠. :-) 주인공보다는 참견쟁이 조역 쪽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햄튼이 그를 다루는 방식은 진지합니다. 물론 그는 리튼이라는 캐릭터의 속물적이고 이기적이며 야비한 측면을 전혀 감추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 매력적이고 거의 사랑스럽기까지 한 인물입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는 굉장한 감정적 깊이를 가진 인물입니다.

분명 이런 인물을 연기하는 건 굉장히 힘든 일입니다. 배우는 어릿광대와 러브 스토리의 주인공을 동시에 연기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다행히도 조나단 프라이스가 세상에 있어서 이 무시무시한 일을 해냈습니다.

엠마 톰슨의 캐링턴 묘사도 신선하고 재미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주인공은 제목과는 달리 리튼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캐링턴과 관련된 리튼의 삶이라고 해야겠죠. 캐링턴은 전적으로 리튼에 그녀의 존재를 의지하는데, 그래도 조금 더 나갔어야 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캐링턴이 화가라는 것 역시 너무 가볍게 다루어지지 않았나 싶고요. 하여간 캐링턴은 영화 속에서 다루어졌던 것보다는 훨씬 다양한 삶의 궤적을 남겼던 사람이었으니 지나치게 리튼에 의존한 캐링턴의 묘사는 조금 불만스럽습니다.

5.

[캐링턴]은 크리스토퍼 햄튼의 감독 처녀작이지만 이 영화에서도 그를 감독으로보다는 각본가로 보기가 더 쉽습니다. 분명 기술적으로 매끄러운 영화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종류의 영화에서 감독으로서 자신의 존재를 인식시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임스 아이보리를 계속 다시 보게 되는 것이지만요. (97/11/26)

DJUNA

기타등등

다시 봐야 할 영화입니다. 그 동안 이 영화에 출연한 수많은 배우들이 엄청 떠 버렸으니까요. 자넷 맥티어는 [텀블위즈]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고, 알렉스 킹스턴은 [ER]로 미국 텔레비전에 진출했으며, 제레미 노덤도 [엠마]로 아주 익숙해진 얼굴이 되었지요. 물론 [다크 시티]로 할리우드에 진출한 루퍼스 슈얼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