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짐 자무시 Jim Jarmusch

주연
빌 머레이....돈 존스턴
Bill Murray....Don Johnston
제프리 라이트....윈스턴
Jeffrey Wright....Winston
줄리 델피....셰리
Julie Delpy....Sherry
샤론 스톤....로라 다니엘스 밀러
Sharon Stone....Laura Daniels Miller
프랜시스 콘로이....도라 앤더슨
Frances Conroy....Dora Anderson
제시카 랭....카르멘 마코우스키 박사
Jessica Lange....Dr. Carmen Markowski
틸다 스윈튼....페니
Tilda Swinton....Penny
알렉시스 지나....롤리타
Alexis Dziena....Lolita
크리스토퍼 맥도널드....론
Christopher McDonald....Ron
클로에 세비니....카르멘의 비서
Chloë Sevigny....Carmen's Assistant
펠 제임스....선 그린
Pell James....Sun Green

돈

[브로큰 플라워]의 주인공 돈에겐 사랑하는 것이 두 개 있었습니다. 컴퓨터와 여자요. 하지만 컴퓨터로 돈을 번 중년 후반의 그에겐 그 둘에 대한 열정은 사라진지 오랩니다. 그의 집에는 컴퓨터가 없고 여자친구 셰리는 떠나 버렸죠. 그가 하는 일이라곤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거나 이웃 사촌 윈스턴을 방문하는 것 뿐입니다.

셰리가 떠나던 날, 그에겐 핑크색 종이에 붉은 색 글씨로 쓰여진 익명의 편지가 도착합니다. 그 익명의 편지를 쓴 사람은 돈과 헤어진 뒤로 아들을 낳아 혼자 키웠는데, 19살이 된 그 젊은이가 아무래도 지금 아버지를 찾아 나선 것 같다고요.

돈은 기겁하지만 적극적인 대응은 상상도 하지 못합니다. 그를 부추기는 건 자칭 아마추어 탐정인 이웃 윈스턴이죠. 윈스턴은 돈이 뽑은 용의자 리스트에서 네 사람의 현주소를 찾아 돈에게 넘겨주고 그들을 만나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옛 여자친구들을 찾아나서는 돈의 여행이 시작되지요.

이 설정은 낯 익습니다. 쥘리앙 뒤비비에의 [무도회의 수첩]이 이와 아주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지요. 돈 존스턴은 남성판 크리스틴인 셈입니다. 마리 벨이 연기한 크리스틴이 옛 구애자들을 찾아나서는 것처럼 돈 역시 뒤늦게 옛 여자친구들을 만나러 다니니까요.

이 영화는 추리물이기도 합니다. 범죄는 없지만 미스터리는 있고 용의자들과 단서들과 탐정도 있습니다. 이들을 다루는 방식도 무척 장르적이고요.

그러나 이 영화엔 [무도회의 수첩]과 전통적인 추리물이 갖추고 있는 필수적인 것들이 빠져 있습니다. 열정과 동기와 의미와 방향요. 돈은 크리스틴이나 추리소설의 명탐정들과는 달리 이 미스터리를 해결할 아무런 의지가 없습니다. 영화 내내 그를 지배하는 것은 그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유일한 대상인 소파에 돌아가 누우려는 욕망뿐입니다. 영화는 추리물의 도구들을 사용하고 있긴 하지만 그걸 이용해 우리가 어떤 진상에 도달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그것들은 단지 의미가 있는 척하며 그 자리에 놓여 있을 뿐이에요. 심지어 개별 챕터들을 구성하는 '여자친구들'도 입체적인 인물이라기보다는 스테레오타입이나 캐리커처들에 더 가깝습니다.

그 때문에 이 영화의 줄거리는 통일된 질서와 분명한 의미가 없는 분절된 농담들의 나열이 됩니다. 이건 단점이 아니죠. 사실 바로 그것이 이 영화의 주제이며 핵심입니다. [브로큰 플라워]의 세계는 그 세계에 속해 있는 한 사람의 개인의 능력으로서는 이해할 수도 없고 예측도 하기 어려우며 심지어 제대로 과거를 반추도 할만한 단서도 주지 않는 느릿한 카오스입니다.

짐 자무시와 빌 머레이는 모두 이 느긋한 카오스를 즐기고 있습니다. 머레이의 그 절묘한 무표정함과 무덤덤함은 이 영화의 주제와 완벽하게 들어맞죠. 샤론 스톤에서부터 틸다 스윈튼에 이르는 여자친구 역의 쟁쟁한 배우들도 캐릭터에 어떤 깊이를 심는 대신 유희적인 태도로 이들의 캐릭터에 접근하고 있습니다. 그게 또 재미있고요. 이들 배우들의 팬들이라면 너무 짧게 나온다고 불평할지도 모르지만... 사실 이들의 스타 파워 자체가 맥거핀이기도 합니다. 이런 식의 농담에서 캐스팅만 유일하게 진지할 거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지 않겠어요? (05/11/24)

DJUNA

기타등등

샤론 스톤 에피소드에 나오는 노골적인 [롤리타] 인용은 일종의 고백일 수도 있겠죠. 전체적으로 이 작품의 분위기는 나보코프식 추리물에 가까우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