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앤디 워쇼스키 Andy Wachowski
래리 워쇼스키 Larry Wachowski

주연
지나 거숀....코키
Gina Gershon....Corky
제니퍼 틸리....바이올렛
Jennifer Tilly....Violet
조 판톨리아노....시저
Joe Pantoliano....Ceasar
메리 마라....바텐더
Mary Mara....Bartender
수지 브라이트....제시
Susie Bright....Jesse
마가렛 스미스....여자 경찰
Margaret Smith....Woman Cop
배리 키블....셸리
Barry Kivel....Shelly
크리스토퍼 멜로니....조니 마조네
Christopher Meloni....Johnnie Marzzone
존 P. 라이언....미키 말나토
John P. Ryan....Micky Malnato
피터 스펠로스....루
Peter Spellos....Lou
이반 케인....경관 #1
Ivan Kane....Cop #1
케빈 마이클 리처드슨....경관 #2
Kevin Michael Richardson....Cop #2
리처드 C. 사라피안....지노 마조네
Richard C. Sarafian....Gino Marzzone
진 버캔....로이
Gene Borkan....Roy

듀나 [바운드]를 만들기 전에 워쇼스키 형제가 거쳤던 경력은 [어새신]의 각본을 쓴 것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예습이나 할까 하고 전날 [어새신]을 빌려다보았답니다.

솔직히 말해 [어새신]의 각본은 아무리 생각해도 잘 썼다고 할 수는 없었습니다. 물론 그 각본에도 좋은 점들은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깨에 힘을 너무 준 데다가 등장인물들의 동기들과 상황들이 너무나도 믿을 수가 없어서 전체적으로 우스꽝스러운 영화가 되고 말았지요.

그런 사람들이 [바운드]를 만들었으니, 와, 이 사람들 그 동안 열심히 공부한 모양입니다. 찢어진 그물같은 [어새신]의 헐거움은 어디로 갔을까요? [바운드]의 각본은 보기 드물게 잘 짜여져 있고 특히 타이밍은 교과서로 써도 좋을 정도입니다.

분명히 노력의 소산입니다. [바운드]는 타란티노보다는 코엔 형제의 작품에 가깝습니다. [어새신]의 허황된 구도에서 교훈을 얻었는지, 워쇼스키 형제는 이번엔 고전적인 필름 느와르 영화의 인물구도와 상황 설정을 그대로 쓰고 있습니다. [바운드]의 코키와 바이올렛은 겉멋에 찬 [어새신]의 라스와 베인과는 달리 필사적이고 행동도 믿을 만합니다. 서스펜스를 구축하는 방식도 모범생처럼 정석을 따르고 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낡아보이지 않는 이유는 워쇼스키 형제가 무엇을 깨야하는지도 정확하게 계산해서(아마 코엔 형제와 타란티노 등등을 참조해서)끼워 넣었기 때문이지요. 이런 꼼꼼한 계산 때문에 가끔 숨이 막힐 때도 있지만 바로 그런 폐소공포증이야 말로 [바운드]라는 영화의 핵심이 아니겠어요?

파프리카 물론 이 영화의 각본이 아주 잘 짜여진 것이라는 사실은 부인할 생각이 없습니다. 워쇼스키 형제가 영리한 친구들이라는 사실도 부인할 생각이 없고요. 하지만 이 친구들의 영리함은 조직적이고 세련된 각본을 꾸몄다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각본을 조직적이고 영리하게 보이게끔 만드는 상황을 적절하게 이용했다는 데에 있지 않을까요?

[바운드]의 각본은 뭐랄까, 꽤 음흉합니다. 이 영화의 인물 구도는 필름 느와르에서 빌려왔지만 플롯은 고전적인 슬랩스틱 코미디에 가깝습니다. [바운드]의 내용을 한마디로 줄이라면 '일이 정신없이 꼬인다'라고 할 수 있죠. 코키와 바이올렛의 각본은 꽤 잘 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상의 반응을 조금 잘못 계산한 탓에 끝없이 꼬이기 시작합니다. 적당히 꼬인 게 풀어질 만하면 새로운 등장인물들이나 상황이 들어와서 그걸 또 꼬기 시작하고요. 아파트의 방 두 개를 두고 쉴새없이 이리저리 오가면서 엉망진창이 되는 이야기는 이미 보드빌 코미디 시대부터 있어왔습니다.

아까 워쇼스키 형제가 영리한 이유가 각본의 영리함 때문이 아니라 각본을 영리하게 만드는 상황을 선택했다는 데에 있다고 말했는데 그건 이런 뜻입니다. [바운드]의 각본은 게임과도 같습니다. 기본적인 상황을 깔아놓고 어떻게 되나 구경만 해도 이야기가 만들어지기 때문이죠. 코키의 기본 계획만 빼면 [바운드]의 극중 행동은 모두 극단적인 상황에서 삐져나온 임기응변의 행동들입니다. 래리와 앤디 워쇼스키가 주거니 받거니 하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군요. "이런 상황이라면 너는 어떻게 하겠냐?" "나같으면 이렇게 한다. 그럼 넌 다음엔 어떻게 하겠니?"

이런 체스 게임과도 같은 상황 타개 ->새로운 상황... 식의 설정은 자연스럽게 인물의 행동을 타당성있게 만들고 극적구조를 꽉 짜여지게 합니다. 작가가 주의할 점은 그게 어디로 가야 할지 미리 아는 것 뿐입니다. 워쇼스키 형제의 전작 [어새신]과 비교하면 금방 드러나죠. [어새신]의 각본이 엉성했던 이유는 처음에 만들어놓았던 스토리 라인을 서툴게 따라가기만 했던 데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운드]와 같은 상황에서는 어느 부분에서건 그냥 대충 넘어갈 수는 없죠. 그랬다가는 이야기가 진행될 수가 없으니까요.

듀나 워쇼스키 형제의 특징이 가장 잘 살아나는 부분은 바로 그들의 블랙 유머입니다. 원래 유머 감각이라는 것이 사람의 본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창이니까 그렇겠지만요. 워쇼스키 형제의 유머는 코엔 형제처럼 차갑지도, 타란티노처럼 장광설로 가득차 있지도 않습니다. 워쇼스키 형제의, 적어도 [바운드]의 유머는 능글맞습니다. 그들의 유머는 순진한 척 눈을 껌뻑거리면서 사람을 놀려대는 스타일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그 배꼽 떨어지는 돈세탁 장면입니다. 놀랍게도 이 황당한 장면에서 웃는 관객들이 거의 없었는데 극중 배역들의 심각한 척하는 연기에 다들 속아넘어간 게 아닌가 싶더군요. 하지만 영화는 그런 심각한 척 하기와 패러디로 가득차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바이올렛이 코키를 유혹하는 장면을 보세요. "내 문신 보여줄까요?" 하하. 물론 이런 유머는 스트레이트한 영화의 장면을 그대로 호모섹슈얼한 관계에 적용시키는 비교적 예스러운 농담이지만 말입니다.

파프리카 이 영화의 플롯에서 코키와 바이올렛이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코키가 남자여도 별다른 문제없이 흘러갈 이야기니까요. 하지만 코키가 레즈비언이기 때문에 얻는 장점도 많습니다. 적어도 저는 아주 끈적거릴 수도 있었던 치정 사건이 그들의 레즈비언 관계로 인해 상당히 산뜻하게 마무리지어졌다고 생각한답니다.

듀나 저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그게 과연 보편적인 의견인지는 모르겠군요. :-)

파프리카 그리고 다른 장점도 있습니다. 그 때문에 시저가 종반부에 이르기까지 코키를 의심하지 않을 수 있었고, 모든 사실이 밝혀진 뒤에 시저의 수치감과 당혹감이 증대될 수도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가장 큰 장점은 그들의 관계가 낡은 필름 느와르식 상황에 신선한 느낌을 불어넣어 주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그것 이외에는 다른 의도가 없었겠죠.

듀나 하긴 그게 다일 겁니다. 그러나 워쇼스키 형제는 단순히 색다른 재미로 레즈비언 관계를 묘사하는 것 치고는 꽤 신중을 기하고 있습니다. 하긴 잘못했다간 폴 버호벤처럼 두들겨 맞게 된다는 걸 알만큼 영리했기 때문에 그랬겠지요. 그들은 코키와 바이올렛의 성관계를 묘사할 때 수지 브라이트의 자문을 구하기까지 했습니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이지만 브라이트는 이 영화에서 섹스신 자문만 했을 뿐 아니라 카메오로 출연도 했습니다. 코키가 들어간 레즈비언 바에 잠시 나오죠.

파프리카 그래요? 몰랐군요. 하긴 전 누구처럼 On Our Back의 애독자도 아니니까.

듀나 저야 원래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장면이 나오자 눈에 불을 켜고 찾았거든요. 하여간 지나 거숀은 정말 매력적이지 않았나요? [쇼걸]의 립스틱 레즈비언 역도 잘 어울렸지만 [바운드]의 섹시한 부치역도 정말 좋더군요. 이런 사람이 다이크가 아니라니 세상은 불공평합니다.

파프리카 하지만 코키는 그렇게 강한 캐릭터는 아닙니다. 그녀는 [상하이에서 온 여인]의 오손 웰즈처럼 다소 소극적인 인물이지요.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을 둘 들라고 한다면 시저와 바이올렛일 겁니다. 시저를 연기한 조 판톨리아노는 정말 좋은 배우로 이 영화에 예상치 못한 활력을 불어넣었습니다. 사실 [바운드]의 많은 장면은 시저를 중심으로 이루어집니다.

듀나 이미지상 제니퍼 틸리가 가장 걱정되는 배우였습니다. 하지만 생각만큼 눈에 거슬리지 않았으니 [브로드웨이를 쏴라]에서 제가 무식하게 끌어들인 예단을 계산에 넣으면 틸리가 연기를 참 잘한 모양입니다. 객관적인 의견을 말해야 한다면 틸리가 연기한 고전적인 팜므 파딸르는 아주 성공적이라고 하겠습니다.

파프리카 현대의 팜므 파딸르들은 선배들에 비해 범죄 성공률이 높은 것 같군요. [바디 히트], [원초적 본능], [라스트 시덕션] 그리고 [바운드]까지, 그들은 점점 더 범죄를 훌륭하게 마무리 짓고 있습니다. 아마도 관객들과 영화 제작자들이 점점 솔직해졌기 때문이겠지요. 우리는 그들이 처벌받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사실 [이중 배상]의 어울리지 않는 결말보다야 [바운드]의 해피 엔딩이 더 흐뭇하고 또 주인공의 성격에도 맞지 않습니까?

듀나 결국 우리나라 관객들은 이번에도 코키와 바이올렛의 베드신을 툭툭 끊기는 필름으로 보게 되겠군요. 애들 영화도 아닌데 왜들 그렇게 엉뚱한 부분에 민감한지 모르겠습니다.

파프리카 [바운드]의 음산하고 어두운 화면을 찍어낸 사람이 [클루리스]의 빌 포프라니, 사람은 쉽게 판단할 수 있는 게 아닌 모양입니다. 할 말이 없어요!

듀나 흠, 그 사람은 이미 샘 레이미하고도 일한 적도 있는 걸요. 오히려 [클루리스]가 튀는 영화였죠.

파프리카 그런가요. 참 잘났네요. (97/01/04)

D&P

기타등등

[바운드]의 부작용인가... 지나 거숀은 이후로 스트레이트 역을 맡으면 늘 이상해 보이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