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이현승

주연
지율....지원
김태은....아미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지원과 아미

이현승의 [비트윈]은 [아미그달라]라는 HD 단편 영화 시리즈의 세번째 작품입니다. 이 작품들은 인터넷 영화로 처음 선보였고 저도 그 때 약간의 관심을 가지고 따라간 적 있지만 직접 본 적도 없고 곧 잊어버렸었어요. 얼마 전에 다시 가보니 iMBC의 사이트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더군요. 다른 작품들의 시놉시스를 읽어보면 시리즈의 단편들은 모두 아미그달라라는 정체불명의 카페로 연결되어 있나 봅니다.

내용만 보면 [비트윈]은 전형적인 이현승식 '충무로 페미니즘 영화'입니다. 일종의 환상적인 페미니즘 우화라고 보는 게 맞을 거예요.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작은 레코드점을 운영하는 주인공 지원은 우연히 가게 앞에서 아미그달라 카페의 홍보 라이터를 나누어 주는 아미에게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하지만 지원은 부모의 강요에 의해 억지로 원하지도 않은 결혼을 하게 되고... 이런 식으로 나가요. 이현승의 이전 영화들과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지원과 아미의 관계가 동성애라는 거죠.

영화의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흐릿합니다. 아미그달라 카페 자체가 현실과 동떨어진 곳이고요. 남편의 죽음 이후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은 현실이 아닐 가능성이 더 높아요. 하긴 그런 걸 구별할 필요도 없는 것 같지만요. 이 영화에서 동성애는 가부장 제도의 지리한 억압에서 벗어나기 위한 도피처의 경향이 강합니다.

의도가 어떤 것이건, [비트윈]은 그렇게 인상이 강한 영화가 아닙니다. 이현승의 전작들이 그렇듯 겉도는 경향이 강해요. 그는 마치 페미니즘 과제물을 쓰듯 개념들을 성실하게 나열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는 알겠지만, 그런 노골적인 숙제 성격 때문에 이야기의 진실성은 떨어지죠. 드라마가 안에서 자연스럽게 올라오는 대신 기성품처럼 사전 조립되어 나오는 겁니다.

영화의 동성애 소재도 그렇게 잘 대접받은 편은 아닙니다. 지원과 아미의 이야기는 페미니즘 강의 숙제와 레즈비언 판타지 사이를 거칠게 오가지만 어느 쪽으로도 설득력은 없습니다. 감독이 이성애자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냥 넘어갈 수는 없어요. [쇼우 미 러브]와 같은 성공작이 있으니까요. 배우들의 CF 모델식 외모가 영화의 사실성을 떨어뜨린 것도 아닙니다. 역시 같은 영화가 반박의 근거가 되거든요. [비트윈]이 레즈비언 영화로 성공하지 못한 건 보다 단순한 이유 때문입니다. 지원이라는 캐릭터나 그 사람의 고민이 기계적이고 평면적이기 때문이지요. 당연히 그 사람의 욕망과 욕망의 표현도 종이처럼 얇을 수밖에 없습니다.

전체적으로 [비트윈]은 미숙한 아이디어와 스토리를 대중 교화의 의무감으로 커버한 듯한 느낌이 강합니다. 제가 결론지어 말하고 싶은 건 간단합니다. '개화되지 않은' 관객들에게도 좋은 영화와 그렇지 않은 영화의 차이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아무리 그들을 관객으로 삼는다고 주장해도 작품 질에 대한 변명은 되지 않는다는 거죠. (02/12/11)

DJUNA

기타등등

오리지널 HD 포맷으로 봤다면 감상이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