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야코프 프로타자노프 Yakov Protazanov

주연
니콜라이 체레텔리....로스/스피리디노프
Nikolai Tsereteli....Los/Spiridinov
베라 쿠인지....나타샤 로스
Vera Kuindzhi....Natacha Los
파벨 폴....엘리치
Pavel Pol....Ehrlich
율리야 솔른트세바....아엘리따 여왕
Yuliya Solntseva....Queen Aelita
이고르 일린스키....크라츠코프/부세르프
Igor Ilyinsky....Kratskov/Buserv
니콜라이 바탈로프....구세프
Nikolai Batalov....Gussev
베라 올로바....마샤
Vera Orlova....Masha
콘스탄틴 에거트....투스쿱
Konstantin Eggert....Tuskub
유리 자바드스키....고르
Yuri Zavadsky....Gor
알렉산드라 페레고네츠....이호슈카
Aleksandra Peregonets....Ihoshka

아엘리따와 로스

알렉세이 톨스토이의 동명 중편소설을 각색한 야코프 프로타자노프의 [아엘리따]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개의 이야기를 번갈아 다루고 있습니다. 첫번째 이야기의 무대는 20년대 초반의 모스크바입니다. 주인공인 엔지니어 로스는 20년대 초반의 극심한 경제적 위기와 그보다 더 심각한 의처증에 시달리며 심란한 삶을 살고 있지요. 두번째 이야기의 무대는 화성입니다. 마치 아방가르드 패션쇼와 [1984]의 독재국가를 결합한 듯한 이 세계의 여왕 아엘리따는 과학자 고르가 발명한 망원경으로 지구의 세계를 바라보다 로스에게 반하게 되지요. 따로따로 진행되던 두 가지 이야기는 결국 아내 나타샤에게 총질을 한 로스가 자기가 설계한 우주선을 타고 화성으로 날아가면서 하나로 합쳐집니다.

현대 관객들에게 [아엘리따]의 이야기 자체는 특별히 새롭게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지구의 평범한 남자가 외계의 행성에서 왕족 여성과 사랑에 빠지고 악당들과 싸운다는 이야기는 [화성의 공주]나 [플래시 고든]과 같은 작품들을 통해 얼마든지 접할 수 있지요. 당시 아방가르드였던 구성주의와 입체주의의 영향이 보이는 정신나간 화성 세트는 [메트로폴리스]를 연상시키고요. 영화가 내세우는 첨단은 처음부터 쉽게 수렴되는 성질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엘리따]는 여전히 낯선 영화입니다. 그건 이 영화가 비교적 우리에게 많이 소개되지 않은 구 소련의 SF물이기 때문이지요. 이들이 많이 소개되어 있지 않은 건 아쉬운 일인데, 지난 세기에 구 소련은 영미권 국가들과 함께 SF 장르에 가장 적극적인 관심을 보였던 나라였기 때문입니다.

미적 특성과 스토리가 아무리 비슷한 점으로 수렴된다고 해도 [아엘리따]는 구 소련의 독특한 풍미를 풍깁니다. 로스의 모험담은 외계의 신호를 받고 화성행 우주선을 쏘아올리는 SF 영웅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혁명 이후 경제적 곤란과 사회적 혼란 속에서 시달리던 한 지식인 남자의 수난기이기도 하지요. 영화의 노골적인 정치 프로파겐다는 간접적인 시대의 반영이기도 하지만 그냥 복고적으로 귀엽기도 합니다. 아까 [메트로폴리스]와 비교했지만 20년대 소련의 문화적 역동기에 바탕을 둔 [아엘리따]의 미술은 [메트로폴리스]와 같지 않습니다. [메트로폴리스]보다 먼저이기도 하고요.

유감스럽게도 [아엘리따]는 아주 만족스러운 장르 경험을 제공해주는 작품은 아닙니다. 일단 지구 이야기의 비중이 지나치게 크지요. 전개되는 이야기도 당시의 풍속사적인 요소들을 지워내면 흔해빠진 멜로드라마에 불과하고요. 로스와 그의 일행이 화성에서 노동자 혁명을 일으키려 한다는 아이디어는 귀엽긴 하지만 앞의 이야기나 전체적인 주제와 그렇게 잘 맞지 않습니다. 톨스토이의 원작이 어땠는지는 몰라도, 영화는 복잡한 이야기를 그렇게 명쾌하게 담아내지도, 무성영화적 꿈 속으로 관객들을 집어던지지도 못합니다.

[아엘리따]는 정말 근사할 수도 있었던 소재가 정치적 타협과 예술적 한계 속에 묻혀버린 또 하나의 예입니다. 하지만 그 한계 속에서도 영화는 충분한 양의 도전정신과 이야기꾼의 입담을 숨겨놓고 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워요. (04/09/21)

DJUNA

기타등등

루시코에서는 꾸준히 소련에서 만들어진 장르 SF들을 출시하고 있으니 앞으로 더 많은 소련 SF 작품들을 볼 기회가 생기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