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이반 라이트먼 Ivan Reitman

주연
앤 헤이시....로빈 먼로
Anne Heche....Robin Monroe
해리슨 포드....퀸 해리스
Harrison Ford....Quinn Harris
데이빗 쉼머....프랭크 마틴
David Schwimmer....Frank Martin
재클린 오브라도스....안젤리카
Jacqueline Obradors....Angelica

1. 앤 헤이시

[식스 데이 세븐 나잇]은 영화보다 캐스팅에 대한 스캔들로 더 소란을 피웠던 영화입니다. 이 영화에서 해리슨 포드의 상대역을 연기한 배우 앤 헤이시가 계약 직후에 자신과 엘렌 드제너러스가 애인 사이라는 걸 밝혔기 때문이죠. 어떻게 될까요, 과연 메이저 영화의 관객들이 공공연한 동성애자가 주연인 로맨틱 코미디를 보러 갈까요? 아니면 거부할까요?

이반 라이트먼, 디즈니, 앤 헤이시 모두 개봉 전날까지 상당히 서스펜스 넘치는 시간을 보냈겠지요. 특히 헤이시한테는 그랬을 겁니다. 헐리웃 판에서 살아남느냐, 살아남지 않느냐가 이 영화의 결과에 달렸었으니까요.

결과는? [식스 데이 세븐 나잇]은 지금까지 미국에서 7천만 달러의 흥행 수익을 올렸습니다. 본전치기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 동성애 이슈만 걸고 넘어진다면 상당히 성공적이었다고 해야겠습니다.

물론 이 영화는 비슷한 시기에 개봉된 블록버스터들과 같이 엄청난 흥행수익은 올리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디즈니나 라이트먼도 그 정도까지는 기대하지 않았을 듯 합니다. 해리슨 포드라는 스타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포드의 로맨틱한 영화들은 언제나 약하지 않았습니까?

지금까지 이 영화가 걷어들인 흥행 수익을 대충보면 개봉 이전에 영화 관련 전문가들이나 잡지들이 예상했던 것과 거의 같거나 더 낫습니다. 사실 이 정도의 완성도와 스케일의 영화에 무언가 더 기대하는 건 지나친 욕심입니다.

고로 '헤이시 이슈는 영화에 별다른 부정적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라고 상당히 강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관객을 대상으로 한 몇몇 설문 조사들도 이를 지지하고 있고요. 게다가 발빠른 헐리웃 사람들의 다음 수도 그만큼 헤이시 편에게 유리합니다. [식스 데이 세븐 나잇]이 개봉되자 마자 헤이시는 여러 편의 출연 계약을 성사시켰으니까요. 그 동네 캐스팅 디렉터들의 말을 들어보면 이미 헤이시는 그네들의 'topliner' 리스트에 올라 있다고 하더군요. 이 정도면 상당히 성공적이 아닙니까?

어찌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도대체 우리가 남의 사생활에까지 그렇게 야무지게 간섭해야 할 이유는 뭡니까? 결국 우리가 보는 것은 스크린 위의 이미지일 뿐이잖아요. 헤이시는 영리하고 재능도 있으며 연기폭도 넓은 배우입니다. 우리가 신경써야 할 건 그게 전부가 아닐까요?

2. [식스 데이 세븐 나잇]

헤이시 소동에서 벗어나면 할 말이 갑자기 줄어듭니다. [식스 데이 세븐 나잇]은 지나칠 정도로 전형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무인도에 떨어진 두 남녀 이야기는 헐리웃에서만 가지고 논 이야기도 아니지 않나요? [아프리카의 여왕]에서 [병사와 수녀], [귀부인과 승무원]... 예를 들려면 끝도 없습니다. 도시 여자와 거친 남자의 이야기로 넓힌다면 선례는 더 넓어지죠. [식스 데이 세븐 나잇]은 이 모든 영화들이 지나쳤던 길을 거의 하나도 빼놓지 않고 따라갑니다. 그러니 이 스토리에 대해 뭔가 말하는 것 자체가 시간낭비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소재로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일까? 언제나 하는 말이지만 정반대입니다. 고루한 소재의 장르 영화를 안이한 수준 이상으로 만드는 것은 가장 어려운 작업 중 하나입니다. 게다가 [식스 데이 세븐 나잇]에서처럼 클리셰 속에서 초지일관할 생각이라면 정말로 대단한 장인의 손길이 필요한 법입니다. 이런 내용에 새로운 요소를 첨가하는 것은 오히려 쉬운 해결책입니다.

라이트먼의 이 영화는 '안이한 수준 이상'의 작품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 영화를 욕하기도 뭣한 것이, 이반 라이트먼이 의도했던 영화가 정확하게 이 수준인 것 같기 때문입니다. 스타 배우들을 보면서 편안하고 익숙한 이야기를 생각없이 따라가며 가끔가다가 이국적인 풍광을 즐기는 것. 그런 것들을 기대하고 온 관객들이 그 수준에서 만족한다면야 괜히 끼어들어서 왈가왈부할 필요도 없겠지요.

3. 배우들

특별한 내용도 없고 캐릭터도 독특한 구석이 없기 때문에, 이런 영화는 거의 전적으로 스타 파워에 의지하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요새 헐리웃 공식에 따르면 해리슨 포드와 앤 헤이시는 꽤 적절한 선택입니다. 포드가 고정 관객들을 끌어오고 재능있는 신인인 헤이시가 새로운 요소를 첨가하고 뭐 그런 거죠. 그 결과 둘은 사실 아버지와 딸을 연기해야 할 만큼 나이차가 크지만 그네들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앙상블은 상당히 좋습니다. 그들의 이야기가 조금 더 그럴싸하게 발전하지 못한 것은 각본 탓이지 배우 탓은 아닙니다.

포드는 자신의 전매 특허인 능구렁이같은 중년남자 역을 늘 하던대로 해내는데, 언제나처럼 매우 편해보입니다. 게다가 비행광인 그의 사생활의 일부도 살짝 엿볼 수 있죠. 헤이시는 조금 더 프로페셔널합니다. 급할 게 없는 포드와는 사정이 다르니 당연하다고 해야겠죠. 그 때문에 해리슨 포드의 대사보다 그 뒤에 따르는 헤이시의 반응이 더 영향력이 큰 경우가 가끔 발생하는데, 그렇게 보기가 나쁘지 않고 오히려 꽤 재미있기도 합니다.

이들의 끄트머리에 [프렌즈]의 데이빗 쉼머가 따라붙습니다. 쉼머 역시 새로운 연기 따위는 보여주지도 않습니다. 그냥 [프렌즈]의 로스를 영화 속에 그대로 끌어온 거죠. 2.35:1의 납작한 와이드 스크린 화면은 그 사람의 긴 얼굴을 유달리 길쭉하게 만들어서 꽤 웃깁니다. :-)

3. 별점주기

별점 줄 시간이네요. 대충 두 개 반이 적당하고 라이트먼도 이 정도의 평점에 만족할 것 같습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애당초부터 그의 목표가 이 수준이 아니었겠어요? (98/08/19)

D&P

기타등등

올해에는 뉴욕의 여성 잡지 편집장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가 세 편이나 나왔는데, [식스 데이 세븐 나잇]은 그 마지막 영화입니다. 다들 이런 캐릭터들의 모델이 악명높은(?) 전 뉴요커 편집장인 티나 브라운이라고 믿고 있죠. 이런 사태라면 브라운이 이 영화들한테 로열티를 걷어들여야 한다는 농담이 떠도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하여간 이런 영화들이, 브라운이 뉴요커를 떠나는 즈음에 갑자기 터져 나온 것이 단순히 우연이었나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