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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99년 12월 17일

첫째날 한 아이가 죽었다

성냥불이 어두운 화면을 밝힌다. 이상의 시 '오감도' 첫째편의 불길함을 떠올리듯, '첫째날 한아이가 죽었다. 머리가 텅텅 빈 채. 아마도 진실을 기억해냈나보다' 로 시작하는 내레이션. 독백 속 날짜가 늘어가면서 소녀의 내레이션 역시 화자를 늘려가며 주술이 된다.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 (24일 개봉)의 시작은 어둠과 빛, 침묵과 공명, 현실과 환상 사이에 잠시 머물다, 공포영화 장르의 매력적 불안속으로 관객을 단숨에 빨아들인다.

[여고괴담]은 할리우드에서 [에일리언]이 그랬듯, 충무로에서 가장 창의적인 시리즈로 이어갈 것 같다. 문제의식과 재능을 갖춘 신인 감독, 많지않은 예산, 신인 배우들…. 이 시리즈는 앞으로도 스타일 실험과 장르 혁신, 젊은 영화인 산실로 각광받을 것 같다. '두 번째 이야기' 역시 신예 김태용, 민규동이 공동 연출했다.

민아(김민선)는 학교 수돗가에서 효신(박예진)과 시은(이영진)의 교환일기를 발견하고서 호기심에 읽어본다. 민아는 양호실에서 둘의 재회를 목격한다. 둘은 서로에게 극단적으로 집착하다 헤어진 사이. 효신은 신체검사를 받다 투신자살한다.

[캐리]와 [여고괴담]을 합친듯한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는 적당히 통속적이고 감상적이면서도 적당히 지적이다. 그리고 많이 슬프고 잔상이 오래 가는 공포영화다. 공포영화라고? 직접 묘사하는 죽음이 투신자살 한 건밖에 없는데도? 말초적, 피학적 살육을 기대 했다면 이 영화는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붉은 피바다 대신, 슬픔으로 하얀 이 이상한 공포영화 색조엔 어디에도 몸 부릴 곳 없는 소녀의 상실감이 문신처럼 배있다. 그저 '한 아이가 죽었다' 는 말로 기억되길 원했던 효신은 슬픔을 거두고 거대한 무로 돌아갔을까.

이 영화의 두려움 밑바닥엔 상실이 있다. 마무리는 해원일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어른스런 공포영화다. 전편의 목맨 시체가 잘못된 제도에 교살당한 10대의 고통을 전시한다면, 2편의 투신 시체는 궤도이탈을 용납않는 세상의 중력을 이기지 못한 10대의 아찔한 추락을 웅변한다.

회상장면 나열이 종종 리듬을 잃고 귀신 시점 샷을 비롯한 몇몇 부분이 관습적이지만, 이 영화는 정말 빼어난 스타일을 자랑한다. 비디오 카메라에 핸드헬드를 적극 활용해 즉흥적 앵글로 긴장을 불어넣는다. 하늘을 캔버스 삼아 인물 실루엣으로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소란과 정적을 대비하는 능력이나 내레이션 활용법에선 사운드 다루는 재주도 과시한다. 여고 특유의 활력과 유머도 잊지않았다. 전편처럼 배우 이미지를 제대로 끌어 쓴 용인술도 탁월하다.

[미술관 옆 동물원]으로 열고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로 닫는 올해 한국 장르영화 식탁은 참 맛깔스럽다. 그러고보니 공교롭게도, 두 영화 모두 이춘연 제작-오기민 프로듀서 체제의 씨네2000 작품이다.

이동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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